베네딕틴 청년모임

수도성소와 그 성장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선물이다. 부르심을 받은 개인은 이를 인격적인 도전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회헌 6,1

김 호세아 수녀님 이야기

작성자
seoulosb
작성일
2023-11-27 08:45
조회
2640


하느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시는 시간,
누구에게나 있는 그 카이로스의 순간이 어느 날 내게 닥친건 공교롭게도 실패를 통해서였다.

입회하기 전, 나는 이력서에 한줄 한줄 채워지는 경력을 어떻게 빛나게 할 것인지, 스펙 쌓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가장 좋은 스펙의 정점이라고 느껴진 곳에 지원했다. 긴 입사전형의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최종 2인에 까지 들게 되었다.
결과는 하느님께 맡겨놓겠다고 했지만 내심 기대가 컸다. 또, 이제까지 최선을 다해 왔던 나의 경력과 진심을 알아 줄 거라고 은근히 믿고 있었다.
전에 없이 54일 기도를 시작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합격 기원 기도를 했지만, 기도하면서 느껴진 것은 의외로 지난 삶에 대한 통회감이었다.
나는 얼마나 진실하게 살아왔지?
내가 진심이라고 해왔던 일들이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라는 질문과 함께 내 모습 하나하나가 벗겨지는 듯했다.
약자를 위해, 정의와 복지를 위해 헌신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욕심은 화려한 스펙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느님 앞에서 진실과 거짓은 감출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때 복중에서 올라온 깊은 통회의 정으로 나는 가면을 벗고 하느님 앞에 서게 되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열정과 노력을 다한 만큼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그때 종소리가 울리듯 수도원에 입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때 입회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고, 도피가 아니냐고 충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편안했다. 입사가 아니라 입회로 전환하시려고 하느님께서 내 마음을 준비시키고 계셨다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도 삶이 피상적으로 흘러갈 때, 매너리즘에 빠질 때, 무언가 최선을 다하지만 허전할 때는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린다.
마음 부서짐은 또 하나의 시작이다. 아주 오랫동안 내 곁을 맴돌며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움직이기를 기다린 어떤 사람,
그가 이제 때가 되어 자신을 드러내고 건네는 프로포즈처럼, 하느님은 그렇게 다가오셨다.
나를 너무 잘 알고 사랑하기에 원하는 것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지켜봐 온 단 한 사람, 내게 온 마음을 기울여 온 그를 내가 알아보게 된 것이었다.
그 사랑은 설레이고 완전하다. 지금도 가슴이 식어갈 때는 그 때 만난 그분을 눈을 감고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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