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회 소개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 성 베네딕도 수도규칙 72,11
  • 1909년

    독일 오틸리엔 베네딕도 수도회가 한국으로 진출하여 북한 덕원에 대수도원을 지어 많은 선교활동을 하던 중

  •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Bonifatius Sauer, 1877~1950)께서 툿찡 모원에 한국의 어린이들과 여성들의 복음화를 위해 선교사 파견을 요청한다.

북한 덕원의 오틸리엔 베네딕도 수도회

한국에 툿찡의 수녀들 파견을 요청한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

  • 1925년

    툿찡 모원은 이에 응답하여 4명의 수녀들, Sr. 마틸다 히르쉬(Marilde hirsch), Sr. 크리소스토마 슈미트(Chrysostoma Schmidt), Sr. 헤르메티스 그로흐(Hermetis Groh), Sr. 다니엘라 키르히비클러(Daniela Kirchbichler)을 파견하였으며, 독일에서부터 3개월의 항해 끝에 11월 21일 원산에 도착한다. 이로써 한국에 두번째 수녀회가 들어온 것이다.

Sr. 마틸다 히르쉬 (Mathilde Hirsch),
Sr. 크리소스토마 슈미트
Sr. (Chrysostoma Schmidt),
Sr. 헤르메티스 그로흐 (Hermetis Groh),
Sr. 다니엘라 키르히비클러
Sr. (Daniela Kirchbichler)

한국에 도착한 첫 수녀들과 수사들

원산수녀원과 원산대목구주교관

  • 1927년

    독일 수녀들은 본당, 유치원, 학교, 무료시약소등에서 열심히 선교활동을 펼치며 한국의 많은 지원자들을 양성시켜 12월 8일에는 원산수녀원이 정식 수녀원으로 승격된다.

마리아의 도움 시약소

본당 첫영성체 기념

원산 호수천신학교

원산 해성유치원

수녀원의 첫 수련자들

수녀원의 첫 조선인 지원자들

  • 1949년

    5월 공산정권 하에서 독일 수녀들과 한국수녀들이 모두 체포되었고, 독일선교사들은 옥사덕 수용소로 이송되거나 공산당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고, 1950년 12월 13명의 한국 수녀들이 북한 정권의 탄압을 피해 월남한다.
    (자세한 내용은 하느님의 종 38위를 참고하세요)

부산에 피난간 수녀들과 수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