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요나 수녀님 이야기
작성자
seoulosb
작성일
2023-11-24 11:21
조회
2221
성무일도
'하느님 부르심의 노래'
40여 년 전, 나는 여러 수녀원들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녀가 되고 싶었다.
어떤 수녀원에 가서는 개인 면담을 했고, 어디에 가서는 강의를 들었다.
또 다른 수녀원에서는 그 곳 수련 수녀님들의 노래와 체험담을 들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3박 4일 성소자 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당시 대구에 있던 포교 베네딕도회 수녀원에 갔을 때였다.
나를 만나시던 수녀님이 대화하다가 종소리가 들리자 “우리 저녁기도 하러 갈까?” 하셨다.
나를 데리고 수녀원 성당 외부 손님용 좁은 계단을 통해 수녀원 성당 손님석으로 인도해 주시고는
“처음이니까 그냥 듣기만 해도 괜찮아요.” 하시며 사라지셨다.
제대 너머로 흰 베일을 쓴 수녀님들이 가득 앉아 계신 것이 보였다.
곧이어 이 흰 베일의 무리들이 동시에 일어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면서
잡티 하나 섞이지 않은 여성들만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생소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뭔가의 색다른 소리의 울림이 성당을 채웠다.
1500년 전통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베네딕도회 수녀원의 저녁 성무일도였다.
노래 소리가 잠시 그치더니 수녀님 한 분이 제단으로 올라 가 독서를 하셨다.
맑은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내 귀를 울렸다.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1코린 7,34)
잠시 후 흰 베일의 무리들은 또 다시 동시에 일어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며 천사들의 노래를 이어갔고
나는 그 때 거기서 수녀원 방랑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그 후로부터 30년 동안 그 생소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뭔가 다른 그 소리에 한 부분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수녀원에 들어 올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왔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그 포기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얻게 되었다.
그 많은 것 중의 가장 으뜸은 ‘성무일도’라는 교회의 기도에 맛들이고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처음엔 격식과 세세한 규정 안에 갇힌 이 기도가 서먹서먹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밥 먹는 숫자보다 더 자주 허구한 날 바치다보니 그만 정이 들었나 보다.
언제부터인가 성무일도를 바치는 수도자들의 무리 가운데 함께 있다는 것이 벅찬 기쁨과 감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 인류 공동체의 모든 지향을 마음에 품고 하루에 네 번 때를 맞추어
하느님 앞에 나아가 경배와 흠숭과 탄원을 드리는 이 공동기도의 순간만큼은
나의 부족함과 무력함이 솟아오르는 태양 앞에 안개처럼 소멸되고
나의 삶의 의미가 가장 고귀하게 들여 높여진다는 믿음이 나에게 행복감을 준다.
그러니 기쁘고 감사할 수밖에…….
'하느님 부르심의 노래'
40여 년 전, 나는 여러 수녀원들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녀가 되고 싶었다.
어떤 수녀원에 가서는 개인 면담을 했고, 어디에 가서는 강의를 들었다.
또 다른 수녀원에서는 그 곳 수련 수녀님들의 노래와 체험담을 들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3박 4일 성소자 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당시 대구에 있던 포교 베네딕도회 수녀원에 갔을 때였다.
나를 만나시던 수녀님이 대화하다가 종소리가 들리자 “우리 저녁기도 하러 갈까?” 하셨다.
나를 데리고 수녀원 성당 외부 손님용 좁은 계단을 통해 수녀원 성당 손님석으로 인도해 주시고는
“처음이니까 그냥 듣기만 해도 괜찮아요.” 하시며 사라지셨다.
제대 너머로 흰 베일을 쓴 수녀님들이 가득 앉아 계신 것이 보였다.
곧이어 이 흰 베일의 무리들이 동시에 일어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면서
잡티 하나 섞이지 않은 여성들만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생소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뭔가의 색다른 소리의 울림이 성당을 채웠다.
1500년 전통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베네딕도회 수녀원의 저녁 성무일도였다.
노래 소리가 잠시 그치더니 수녀님 한 분이 제단으로 올라 가 독서를 하셨다.
맑은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내 귀를 울렸다.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1코린 7,34)
잠시 후 흰 베일의 무리들은 또 다시 동시에 일어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며 천사들의 노래를 이어갔고
나는 그 때 거기서 수녀원 방랑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그 후로부터 30년 동안 그 생소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뭔가 다른 그 소리에 한 부분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수녀원에 들어 올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왔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그 포기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얻게 되었다.
그 많은 것 중의 가장 으뜸은 ‘성무일도’라는 교회의 기도에 맛들이고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처음엔 격식과 세세한 규정 안에 갇힌 이 기도가 서먹서먹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밥 먹는 숫자보다 더 자주 허구한 날 바치다보니 그만 정이 들었나 보다.
언제부터인가 성무일도를 바치는 수도자들의 무리 가운데 함께 있다는 것이 벅찬 기쁨과 감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 인류 공동체의 모든 지향을 마음에 품고 하루에 네 번 때를 맞추어
하느님 앞에 나아가 경배와 흠숭과 탄원을 드리는 이 공동기도의 순간만큼은
나의 부족함과 무력함이 솟아오르는 태양 앞에 안개처럼 소멸되고
나의 삶의 의미가 가장 고귀하게 들여 높여진다는 믿음이 나에게 행복감을 준다.
그러니 기쁘고 감사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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