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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IJP를 마치며: 홍 마리아 콜베 수녀님

작성자
seoulosb
작성일
2023-12-05 13:25
조회
156


로마에서 국제 유기서원 프로그램(IJP)을 마치며

2021년 3월,
탄자니아의 Ndanda, Peramiho 프리오랏과 나미비아의 Windhoek 프리오랏, 그리고 한국의 서울 프리오랏에서 각 한 명씩,
총 4명의 유기서원자들이 로마 총원에 모여 약 1년 간의 국제 유기서원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동기 없이 입회한 저에게 불쑥 3명의 동기가 생기며, 로마 총원에서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총원 공동체 수녀님들의 환대 속에 저희는 조금씩 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 기도하고, 미사 때는 영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스와힐리어, 타갈로그어, 한국어로 노래할 기회까지 주어졌습니다.
영어가 공용어라 언어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점차 언어는 의사소통의 하나의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문제의 첫 번째 이유는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영어가 충분하지 못한 저의 말을 수녀님들이 인내로이 들어주시고 그 너머로까지 이해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함께 긴 시간을 생활하게 된 유기서원 수녀님들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유기서원 수녀님들은 저의 영어 선생님이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이해를 못해서 멀뚱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수녀님들은 한 번 더 천천히 말해주었습니다.
또한 저는 유기서원 수녀님들의 순수함,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여유,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점차 서로의 모습을 좀 더 깊이 보게 되면서, 저는 저와 ‘다름’에서 오는 불편함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어려움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상대방의 이러저러한 행동 때문에 내가 불편한 것이고, 이는 나를 불편하게 한 상대방의 잘못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와 ‘다른’ 상대방의 모습을 발견하고 경험했을 뿐이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사람들이 다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지만 같은 문화와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묻혀 잘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고
총원 공동체에서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이 모여 있기에 그 다름을 좀 더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름이 주는 하나하나의 도전들 앞에서 저는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마냥 어려워하기만 할 것인지, 아니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다른 선택지를 찾아볼 것인지.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쉽고도 어려운 일이 있었으니, 바로 저 대신 예수님께서 상대방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예수님이 기도를 잘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그토록 어려워하던 상대방의 ‘다름’이 언제부터인가 때때로 선물처럼 느껴졌고, 때로는 상대방도 그냥 받아주고 안아주고 싶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이유없이 그냥 그 상대방이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다름이 다양성으로 느껴지면서 제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물론 저희는 만날 때부터 이미 헤어질 것이 예정된 만남이었고,
또 함께 한 유기서원 수녀님들이 워낙 성품이 좋았기에 이러한 과정이 한층 수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제가 다름의 풍요로움을 경험했다는 것이고, 또한 앞으로 이를 제 삶에서 살아낼 것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총원 공동체 안에서 제가 한 여러 경험들은 사실 ‘맛보기’ 정도였을 것입니다.
몇 년 동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수녀님들의 여정은 제가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무엇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저로서는 그 안에서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 생활의 아름다움을 체험했다는 것 자체로 굉장히 큰 양분을 얻은 것 같습니다.
우리 회 전체가 하나의 큰 가족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이 시간을, 허락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신 모든 수녀님들,
무엇보다 모든 것을 잘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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