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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에서 온 편지: 강 아브라함 수녀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2-31 13:49
조회
89
               



 

이름값

불가리아 자레브로드에서 강 아브라함 수녀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창세기 12장 1절-

원장 퇴임 이후 10여 년을 여기저기 떠돌았다, 인도를 거처 나미비아, 그리고 지금은 불가리아! 누군가는 나더러 역마살이 끼여 한 곳에 진득하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하는데 지금 와 생각하니 내가 내 이름값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수도명(修道名)으로 받을 때는 구약에 나오는 성조 아브라함의 삶은 전혀 생각지 않고 루가복음 16장,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 나오는 아브라함만을 생각했었다. ‘라자로를 품에 안고 있는 아브라함’처럼 나의 수도 삶도 가난하고, 병들고, 버려지고, 외로운 이 시대의 또 다른 라자로를 품에 안고 살아가는 삶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런데 내가 첫 선교지인 인도로 떠날 때, 조 리드뷔나 수녀님께서 짧은 글이 적힌 엽서를 건네 주셨다, 그 글머리에는 창세기 12장 1절이 적혀 있었다. 아마 수녀님은 내가 길 떠나는 것이 성조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같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나는 수녀님의 글을 읽으며 “나는 이 구약의 아브라함이 아닌데...” 하며 심드렁해 했다. 그리고 기회 될 때마다 사람들에게 ‘나는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루가복음 16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라고 선을 그어 나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강조하였다. 사실 그 인물이 그 인물인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굳이 이렇게 선을 그은 이유는 내가 어떻게 감히 성조 아브라함의 믿음에 근접할 수 있을까 하는 부끄러움에서였다. 그런데 남의 나라 땅을 돌면서 이민족(?)들과 섞여 살다보니 ‘아, 내가 창세기 12장에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같은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게나 지어도 사람은 제 이름값을 하며 살게 되어 있다.”고 언젠가 마산교구 이제민 신부님이 그의 저서에서 말했듯이 나도 뒤늦게 내 이름값을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참고로 신부님은 ‘백성(民)을 구하는(濟) 이’,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사제(司祭)로 사는 것이 자신의 이름값이라 하였다.)

75세의 늦은 나이에 길을 떠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묵묵히 길을 떠난 아브라함과는 달리 인도 공동체로 가라는 안젤라 스트로벨(Angela Strobel) 전 총장님의 제안을 받고 나는 얼마나 궁시렁대었던지... 나이, 언어, 건강, 자격 등을 운운하며 천부당만부당하다고 다시 생각해 보시라고 얼마나 읍소했던지... 그래도 총장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인도 공동체에 사람이 필요하고, 우리는 Missionary Benedictine Sister이며, 언제든지 ‘예’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며 내가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할 때까지 종용하셨다. 이렇게 나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선교를 떠나게 되었다. 선교에 대한 열정은 눈곱만큼도 없이, 그저 장상의 명을 거스를 수 없어 시작된 나의 선교의 삶이 이제 10여 년이 되어간다. 남들이 보면 내가 선교에 대단한 열정이라도 있어 사는 듯한 세월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내가 의미 없이 보낸 듯한 시간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은 있었다.

시대가 변하여, 사도 바오로가 선교 여정에서 겪었던 굶주림과 목마름, 수고와 고생, 추위와 헐벗음,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2코린 11, 23~27) 등은 겪지 않았다 해도 풍습, 언어, 문화가 다른 이들과 산다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 도전이었다. 내가 나를 내려놓지 않으면 갈등과 다툼, 소외와 따돌림은 피할 수가 없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종들과 조카 롯의 종들이 서로 다투게 되었을 때. 가족 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조카 롯에게 좋은 땅을 주고 자신은 산악지대로 자리를 옮겼듯이, 평화를 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 자신의 뜻, 자신의 의지 등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큰 상처를 남기고 떠나가게 된다. 상호문화적인 삶(Intercultural living)을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내 나라 내 땅에서 내 민족과 살아도 갈등과 도전을 피할 수 없는데 하물며 전혀 다른 언어와 사고를 가진 이들과 더불어 산다는 일이 간단한 일이겠는가?

이 나라, 저 나라를 돌면서 나를 깎고 다듬게 된 것은 바로 이 다름의 부딪힘 속에서였다. 그나마 인도와 나미비아에서는 영어로 기도하고, 회의와 강의도 영어로 하기에 소통에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 불가리아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이다 보니 소외감과 이질감, 외로움과 의기소침한 마음이 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게 된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드리는 기도, 알아듣지 못하는 강론, 통역 없이는 처리할 수 없는 업무들... 이 모든 것이 도전이고, 긴장이고, 시련이다. 이 늙은(?)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되었을. 때때로 뜻도 모르고, 발음도 안 되는 성무일도를 드리고 있을 때면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하며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나이 들어 뻔뻔함이 생겼는지 연고를 사러 오는 분들에게 손짓, 발짓해가며 부끄러움도 모른 체 열심히 설명하다 보면 진심이 통했는지 미소 지으며 ‘고맙다’하고 간다. 언어소통이 서로의 관계를 이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하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계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연민, 사랑, 내어 줌이 우선이라는 것!

다른 나라 사람들과 살다 보면, 말도 참 중요하지만 음식 또한 중요하다. 박 안젤라 수녀와 대구 소속의 정 마리이냐시오 수녀는 얼마 전에 다시 열게 된 세키로보(Sekirovo)라는 공동체로 파견되어, 지금 현재 자레브로드(Zarevbrod) 공동체는 한국 수녀 둘, 불가리아 수녀, 독일 수녀, 케냐 수녀 이렇게 다섯 명이 살고 있다. 자신의 식사 당번이 되면 제각기 자기식으로 요리를 한다. 내가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면 한국 사람만 먹는다. 불가리아 수녀가 자신의 전통 음식을 만들어 내놓으면 나는 손을 안 댄다. 그래서 식사 당번도 스트레스다. 모두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요리 해야 하기에 고민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 내 것만, 내 방식만 고집하면 국제 공동체로서의 삶은 와해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나름 노력을 한다. 서로의 삶에, 서로의 문화에 적응하려고, 그리고 그들의 삶의 방식들과 태도들을 존중하려고. 티격태격 작은 다툼은 있을지언정, 그래도 우리 공동체는 서로를 존중하며 별 탈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 일요일마다 미사 오시는 신부님이 식사기도 때마다 ‘원더플(Wonderful)’, ‘어메이징(Amazing)’ 공동체라며 자주 언급하는 것을 보면 국제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나름 모두가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객지를 떠돌며 성조 아브라함이 느꼈을 외로움이 무엇일지 가늠이 된다. 그래도 성조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세워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그는 어려움 중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의 약점이 이것이다. 나는 어려움이나 도전이 닥쳐오면 감사의 마음이 들기보다 불평, 불만, 좌절을 먼저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나를 선교지로 부른 것은 성조 아브라함의 삶을 조금이라도 경험하고 배워, 내 것으로 육화(肉化)하며 살라는 부르심일 것이다, 나는 이 부르심을 내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 이루어야 할 소명이라 생각하고 어디서든, 누구하고든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고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다짐해본다. 그리하여 만민에게 복(福)의 근원은 못되더라도 현재 내가 함께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만나는 이들에게 작은 복의 근원이라도 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지면을 통하여, 내가 어디를 가든지 기도로, 그리고 크든 작든 후원금을 보내 격려해 주시고, 용기를 주신 서울 수녀원 모든 가족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특별히 꾸준히 성금을 보내주신 베네딕도 성서학교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에게, 그리고 이것저것 돌보아주신 모든 수녀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인도와 나미비아, 그리고 최근 불가리에서 찍은 사진을 첨부하면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나의 모습도 강산처럼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 젊은 날의 상큼함과 풋풋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덩치만 남은 것 같다. 몸만 살찌우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살찌워야겠다는 다짐을 조용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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